존 스탁스 - 과소평가된 뉴욕 닉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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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존 스탁스 - 과소평가된 뉴욕 닉스의 전설

by NBAToday 2023. 5. 28.

NBA 역대 레전드 플레이어라고 하면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즉시 떠올리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코비 브라이언트는 농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상징적인 선수들 중 일부입니다. 이러한 유명 스타들만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의 뚜렷한 캐릭터로 팬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1990년대 뉴욕 닉스의 정신을 구현한 집념의 슈팅가드 존 스탁스입니다. 오늘은 존 스탁스의 매혹적인 커리어를 되돌아보고 그가 NBA 리그 전체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조명해보겠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NBA 입성까지의 여정

NBA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존 스탁스의 여정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자란 스탁스는 프로 농구의 꿈을 접을 수도 있었던 수많은 고난과 좌절에 직면했었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불량한 사고들로 뒤덮인 청소년기로 인해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1988년 NBA 드래프트에서 어떤 팀에게도 지명되지 못했고, 이후 식품매장에서 일하기도 하며 대륙 농구 협회(CBA)와 해외 리그의 여러 팀을 전전했습니다. 이런 스탁스의 운명은 1990년 뉴욕 닉스의 스카우트 부서의 관심을 끌면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타고난 재능과 끈기를 알아본 닉스는 그를 자유계약 선수로 영입했습니다. 스탁스는 곧바로 팀에 꼭 필요한 에너지와 수비력, 클러치 슛 감각을 제공하며 팀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았습니다. 그의 끈질긴 직업 정신과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은 농구에 열광하는 뉴욕에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올해의 덩크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함성

존 스탁스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준 순간이 있다면 1993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 시카고 불스와의 치열했던 경기 중 막판 승부를 결정지은 악명 높은 '올해의 덩크슛'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닉스가 간소한 리드로 앞서가던 4쿼터 막판 스탁스는 패트릭 유잉의 픽을 받은 뒤 과감하게 골대를 향해 뛰어올라 그를 저지하려는 호레이스 그랜트와 마이클 조던을 제치고 호쾌한 왼손 슬램 덩크를 성공시켰습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관중들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함성을 내질렀고 뉴욕은 시리즈를 2-0으로 앞설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순간은 뉴욕 닉스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뉴욕 닉스의 감독이었던 팻 라일리는 스탁스가 '그 덩크'를 연습하는 걸 몇 번 보았는데 그렇게 긴박한 상황에 써먹을 생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기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시카고 불스와의 끊임없는 라이벌전

마이클 조던 및 시카고 불스와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는 스탁스의 커리어 상당 부분을 규정했습니다. 뉴욕 닉스와 시카고 불스는 스탁스의 커리어 기간 중 여러 차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고, 스탁스는 매번 조던을 끈질기게 수비하며 농구의 신에게 진정으로 도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시기에 뉴욕 닉스는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매번 아쉽게 패하며 동부 파이널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당시 최고의 전력을 구사하던 시카고 불스가 매번 닉스를 힘겹게 제압한 뒤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을 상대로 비교적 손쉽게 우승을 차지했던 사실을 보면, 스탁스의 활약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탁스가 코트에서 보여준 활약은 역대 최고의 선수와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와 불굴의 투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마침내 결승 단 한 번의 기회 그리고 잊지 못할 아쉬움

1994년 뉴욕 닉스는 비극적인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야구로 외도한 마이클 조던의 공백을 틈타, 또 다른 전설 하킴 올라주원이 이끄는 휴스턴 로켓츠를 상대로 결승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해 2년 연속으로 '올해의 수비수'로 뽑힌 하킴 올라주원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패트릭 유잉을 대신해 스탁스는 폭발적인 득점과 끈질긴 수비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뉴욕이 5차전까지 3-2로 앞설 수 있게 팀을 이끌었고, 닉스는 뉴욕시의 오랜 염원인 NBA 챔피언의 왕좌에 단 한 경기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접전으로 펼쳐진 6차전 경기 종료 5.5초를 남기고 뉴욕이 84대 86으로 2점을 뒤진 상황에서 공격권을 가졌고 스탁스가 3점 라인 밖에서 공을 받았습니다. 가장 확실한 공격 전술인 패트릭 유잉과의 픽앤롤이 구사되었고, 올라주원이 스위치 수비를 펼치며 골대로 향하는 유잉에게 패스가 투입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스탁스는 픽앤롤 상황에서 뛰어난 패서가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훈련 도중 스탁스가 유잉에게 패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자 팻 라일리 감독은 온갖 쓴소리를 내뱉으며 스탁스가 그 패스를 완벽하게 구사할 때까지 모든 선수단을 붙잡아두고 훈련을 계속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패스에 자신이 없던 스탁스는 그 경기와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 플레이에서 위험한 패스를 시도하기보다 이전까지 6개의 슛을 모두 성공한 자신을 믿고 3점슛을 날렸습니다. 그 슛은 모든 뉴욕 팬들의 간절한 염원을 싣고 골대로 향했고 그물을 통화할 확률이 무척 높았습니다. 하지만 스탁스의 손을 떠난 공은 길게 뻗은 올라주원의 손끝에 간신히 닿았고 그렇게 뉴욕의 꿈과 회심의 3점슛 모두 아쉽게 짧은 궤적을 그리며 떨어졌습니다. 이후 7차전에서도 뉴욕은 챔피언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스탁스가 역사에 남을 2/18 야투율과 0/11 3점을 기록하며 휴스턴에 왕좌를 내줬습니다. 경기 후 광적인 뉴욕시의 매스컴으로부터 "극도로 부진한 스탁스를 대체 왜 경기 끝까지 교체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 세례를 받은 팻 라일리 감독은 "파티에서 춤은 나를 그 파티에 초대해 준 사람과 함께 추는 것"이란 감동적인 명언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경쟁자의 유산과 은퇴 이후의 이야기

존 스탁스가 뉴욕 닉스 프랜차이즈에 끼친 영향은 여러 수치로 대변되는 통계와 하이라이트 영상들 이상입니다. 그는 코트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도전에 물러서지 않는 진정한 경쟁자의 본질을 구현했습니다. 스탁스의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꺾이지 않는 끈기는 수많은 농구 선수 지망생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자라온 배경에 상관 없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잡았습니다. 스탁스는 2002년 프로농구에서 은퇴한 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스포츠 업계에 다방면으로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NBA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닉스 팬들 사이에서 스탁스의 지속적인 인기는 2005년 팀에서 그의 등번호 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으며 뉴욕 닉스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그의 입지는 그 누구보다 확고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존 스탁스는 일반 농구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그의 투지와 불굴의 정신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를 뉴욕 닉스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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